[이오리쿠]

2024. 5. 10. 22:45

* 「4월은 너의 거짓말」의 결말부 장면을 빌렸습니다. 원작의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원작을 모르는 분께는 불친절한 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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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정신없이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이오리는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나나세 부부가 앉아 있는 수술실 앞 의자를 찾았다. 몇 번이나 허탕을 치고 넘어질 뻔하며 간신히 그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수술 중'이란 글자가 쓰인 문 위의 등이 켜져 있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예의 바르게 부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겠지만, 오늘만은 그러지 못했다. 쓰러지듯 부부가 앉지 않은 쪽 의자에 주저앉은 이오리는 이내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눈을 꾹 감은 채 되뇌었다.

나나세 씨, 당신에게 사과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요.
저는 딱 하나, 거짓말을 했습니다.


* * *


이즈미 이오리가 나나세 리쿠의 연주를 처음 접한 건 다섯 살 때였다. 형을 응원하러 간 콩쿨에서 천재 쌍둥이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다. 연주가 끝나자 마자 어린 이오리는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또래보다 퍽 어른스러운 아이는 큰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점만은 잘 기억했기에, 입을 꾹 다문채 눈물만 뚝뚝 흘렸다. 부모님마저도 나중에야 발견하고 크게 당황할 정도로 조용한 울음이었고, 충격이었고, 새로운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오리는 그날, 쌍둥이 중 빨간 머리의 소년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음 날부터 이오리는 바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나세 리쿠의 옆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단 한 번 들은 연주로 이런 말을 꺼내기가 부끄럽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이전부터 형의 수업 시간에 기웃거리며 관심을 보였으니 그렇게까지 뜬금없는 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형제가 나란히 연주하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형과 나란히 관중 앞에 서는 상상을 해 보았다. 분명 멋진 무대가 될 것 같았다. 형의 연주를 돋보이게 하는 반주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는 형과의 연습에 매진했다. 솔로보다 반주가 즐거웠다. 자신의 연주로 형의 선율이 더 풍부해지는 감각이 가장 행복했다.

어째서인지 이후로 바이올리니스트 나나세 리쿠를 볼 수 없었기에, 어린 이오리의 좁은 시야는 그날 들었던 그 연주를 잠시 잊었다. 마치 한때의 꿈처럼.
그러나 늘 머릿속 한구석에는 작은 불씨가 남아 있었다. 언젠가 들었던 그 연주를 다시 듣고 싶어. 하지만 그게 언제였지? 꿈속이었을까? 누구의 연주였지? 상상 속 천사였을까?

형과의 사이가 틀어지고, 반주자로서는 우수하지만 솔로로서는 개성 없다는 악평을 듣고, 콩쿨에 서기를 포기하던 때에도 그 불씨를 잊을 수 없었다. 실재한 적이 있기나 한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 낸 공상인지조차 모를 그 꿈 속의 바이올린을.

그러니까.

—처음……뵙겠습니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어렴풋이 느꼈다. 자신 안의 불씨가 반응하는 걸. 그리고 처음으로 연주를 들은 순간 확신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선율은 분명 이 사람의 것이었음을.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무대 위에 서지도 못하면서 지금껏 건반에서 손을 떼지 못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