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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뭘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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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기도 해서 혼란 방지를 위해 분리했습니다.

 

 

2023. 08. 18

그냥 둘이 뽀뽀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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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과 입술이 꾹 누르듯 맞붙었다가, 떨어졌다. 짧지 않았던 접촉에 기상호는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서 금방이라도 멎어 버릴 것만 같았다. 말캉한 입술과 말캉한 입술이 서로 닿는 감촉은 생각보다…… 생각보다 더 간질거리고, 또 이상하게 기분이 들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병찬은 한 번 더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살살 문을 두드리듯 기상호의 입술에 짧고 얕은 키스를 여러 번 남겼다. 그 별것 아닌 접촉에도 기상호는 온몸의 솜털이 오소소 돋는 듯했다. 그런 상호를 보던 박병찬은 짧게 웃으며 한쪽 엄지손가락으로 상대의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리는 척, 살짝 아래로 당기며 말했다.

 

"상호야, 입 벌려야지."

 

거의 입술이 닿기 직전인 거리에서 말한 탓에 숨결이 너무 가까웠다. 그 자극에 정신이 아찔해진 기상호는 입을 벌려서 뭘 어쩌자는 건지 의문을 갖지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입술을 살짝 벌렸다.

마주 보고 있는 박병찬의 눈이 조금 휘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입술이 맞물렸다. 그리고 기상호의 입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생경한 감각에 몸을 움찔, 떨었다가도 기상호는 금세 그 낯설지만 싫지 않은 무언가에 열렬히 응했다. 이 순간을, 이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서로의 타액으로 촉촉해진 입술이 다시 떨어졌을 때, 기상호는 숨이 조금 찬다고 느꼈다. 중간부터 너무 열중한 탓에 숨을 쉬는 법도 잊었던가. 형은 어떨까, 상대에게로 시선을 조금 올리기도 전에 혀 끝을 살짝 깨물렸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반사적으로 아, 하는 소리가 나왔다. 박병찬은 키득거리듯 작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상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우리 상호 귀여워서 어떡하지……."
"거...... 햄, 저도 키가 작지는 않은……."
"나랑 별로 차이도 안 나잖아."

 

그 소리엔 기상호도 달리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던 웃음소리가 이내 쪽쪽 짧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로 변했다. 기상호는 익숙지 않은 감촉도 감촉이지만, 이상하게 자꾸 그려지는 '그 뒤' 때문에 어느새 상대의 옷깃을 붙잡고 있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야 지금은 더 어린 쪽인 자신도 성인이고, 여기는 기상호가 혼자 사는 자취방이고, 두 사람은 사귀는 사이니까…….

 

"상호야."

 

아무리 기상호라도 이 뒤에 올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다.

 

"더 할까?"

 

 

2023. 08. 22

하필이면 데이트 날 폭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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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은 상호가 꽤 기대해 온 날이었다. 얼마나 기대했는지, 오늘 어디를 가서 뭘 할지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느라 전날 밤잠을 설쳤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간만에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었으니까.
데이트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일비일희하냐 싶으면서도, 병찬이나 자신이나 최근 이래저래 바빴던 만큼 간신히 시간을 맞춰 놀러 가기로 한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막 사귀기 시작한 사이에 이 정도 유난은 좀 떨어도 되지 않나 스스로를 달랬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호는 시선을 슬쩍 창문 너머로 옮겼다. 밖에서는 글자 그대로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저놈의 비 탓에 조금 전 병찬에게서 오늘은 아무래도 집에서 쉬는 게 좋겠다는 연락을 받은 참이었다.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힘없이 '네…….'라고 대답하는 상호의 목소리에서는 미련이 뚝뚝 떨어졌지만, 병찬도 저 못지않게 아쉬워하는 기색이었기에 애써 담담한 척 전화를 끊었다.

 

이 지경으로 비가 내려서야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게 어리석은 선택이긴 했다. 그야말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물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듣기로는 관절을 크게 다친 적 있는 사람은 비가 오면 그 부분이 쑤신다지. 할머니들이 허리가 아프면 내일 비가 올 거라고 하시듯이. 상호도 병찬이 무리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아니, 그래도 이게 얼마 만에 맞춘 날인데.
오늘을 얼마나 기대했는데…….
창 바깥을 내다보던 상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우산을 챙겼다.

 

* * *

 

"기상호?!"

 

문이 열리자마자 놀란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거의 뛰어나온 모양인지 실내복 차림 그대로 문을 연 병찬의 얼굴에는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속에 꺼리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어서, 상호는 역시 찾아오길 잘했단 생각부터 들었다. 온몸이 비로 흠뻑 젖은 채 멋쩍게 '하하…….' 하고 웃고 있자니, 병찬은 상호의 팔을 잡아끌어 안으로 들이고는 찬 바람이 드는 현관문부터 닫았다.

 

"아니, 지금 밖에 비가 얼마나 오는데 너는……. 잠깐 기다려, 수건부터 가져올게."

 

그렇게 말한 병찬은 거의 1초 만에 수건을 가져와 상호의 머리부터 닦아 줬다. 당황한 상호가 스스로 하겠다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병찬은 자신의 손으로 상호의 얼굴이며 팔을 다 꼼꼼히 닦아 주고서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충동적으로 집을 나서면서도, 들고나온 우산이 무색하게 옷이며 신발이 다 젖으면서도, 병찬의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면서도 조금은 걱정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쉬고 싶은 형을 방해한 건 아닐까, 이런 날 꾸역꾸역 찾아오면 역시 좀 부담스러울까……. 하지만 샤워라도 할지, 아니면 따뜻한 음료부터 내줄지 묻는 병찬의 목소리에서는 저를 향한 걱정만이 듬뿍 담겨 있었다.

 

응, 역시 보러 오길 잘했다.

 

 

2023. 09. 10

「순정 양키는 비폭력의 꿈을 꾸는가」

그냥 제목을 써 보고 싶어서 전에 풀던 썰 앞부분만... 양키물 이렇게 쓰는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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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선량한 학생 두어 명을 딱 보기에도 불량한 녀석들 여럿이 둘러싼 채 낄낄거리고 있고, 그 무리에 낀 것도 반발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애가 하나.

 

멀리서 스치면 대충 한 무리로 기억할 법한 차림새긴 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가 갈색이고 옷 품이 좀 헐렁하다 뿐, 패거리의 다른 아이들보다는 꽤 수수하고 얌전한 복장이었다.
무엇보다 선 위치가 정말 미묘했다. 무리에 낀 것도 같고, 외부의 도움을 청하는 것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망을 보는 것도 같고, 혹은 도망칠 틈을 엿보는 것도 같고. 다른 녀석들 하는 짓에 끼지는 않으면서, 무심코인지 의도적인지 자꾸 반대 방향을 힐끗거리는 시선이 꽤 불안해 보였다.

 

한 번이라면야 그냥 별나네, 하고 말았을 것을. 하필 그런 모습을 서너 번을 넘어 열 손가락으로 세기 아슬아슬해질 지경까지 보고 나니 '쟤는 왜 저러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래서 박병찬은, 아이가 예의 그 패거리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 * *

 

그러니까…….
이건 아니었다.
어쨌든 이건 기상호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빈말로도 치안이 좋다고 하기 어려운 이 동네에는 여러 패거리가 어슬렁거렸다. 그들은 늘 여유로워 보였고, 두려운 게 없어 보였고, 아무튼 어린 눈에 조금은 멋있어 보일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평균보다는 키가 좀 큰 편인 기상호는 그들이 무리에 끼겠냐 물었을 때 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직접 따라다니며 보게 된 그들의 민낯은 그리 멋있지 않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 애들을 둘러싸고 지갑 좀 꺼내 보라며 깐죽거렸고, 사이가 좋지 못한 패거리와 마주치면 주먹을 주고받았다. 운동은 몰라도 쌈박질은 해 본 적 없는 기상호는 혼란을 틈타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도망가는 길에 구르면서 상처가 생긴 덕에 패싸움에서 튀었단 사실은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이제 와서 빠지고 싶다 한들 '아 그러십니까?' 하고 놔줄 것 같지도 않다는 점이었다.

 

마침 딱히 어디 따라다닐 일이 없는 한가한 휴일, 기상호는 평소보다 조금은 단정한 차림으로 바깥바람을 쐬러 나갔다. 애매한 시간대의 공원에는 사람도 많지 않아 혼자 시간을 죽이기에는 딱인 듯싶었다.
혼자가 되어 최근 녀석들을 따라다닌 일을 떠올리자니 자연히 한숨부터 나왔다. 이걸 우짠다냐……. 눈치껏 빠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러다 진짜 큰 싸움에 휘말리거나 경찰과 마주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자기 마음대로 될 것 같진 않았다…….
땅만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길 좀 묻고 싶은데."

 

 

2023. 09. 20

박병찬이라는 인물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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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모르고 해맑기는 쉽다. 한 번의 절망을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살기도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다. 결국은 극복했으니까.
하지만 두 번의 절망을 겪고도 웃기에는 삶이란 게 꽤 고되다.
안 그래도 갈수록 빡빡해져 가는 세상이다. 그냥 살기도 벅찬데 웃으면서 살려면 난이도가 아주 수직으로 상승한다.

 

박병찬은 그러고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열도 내고, 때로는 하나뿐인 선택지에 매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뭘 해도 망할 순간에 그나마 나은 쪽에 걸어 보기도 하고. 또래들이 쭉쭉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2년이라는 시간을 속수무책으로 흘려보내야만 했던 시기도 있었고.
그럼에도 그는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직전 만남이 아주 큰 엿을 날려 준, 대충 셈해도 자기보다 네 살은 어린 녀석이 무심코 열등감 어린 말을 툭 내뱉는데도 꽤 부드럽게 흘려 넘길 정도의 여유는 갖춘.

 

-그리고 너, 그렇게 재능 없지도 않아.

 

그런 멋있는 말로 남의 등을 밀어 줄 줄도 알고.

 

그 말을 들을 당시의 기상호는 박병찬의 자세한 사정을 몰랐다. 그가 몇 번의 절망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의 부상이 얼마나 그의 미래를 발목 잡고 있는지, 존재 여부조차 막연한 선택지를 가늠할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모든 걸 모를 때도 그는 참 빛나 보였다.

 

아니꼬운 소리를 짧은 웃음으로 받아칠 줄 아는 여유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자기가 만나 본 고등학생 중 가장 농구를 잘하는 사람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는 박병찬이 고등학교 5학년인 것까진 몰랐지만.

 

아무튼 뜬금없이 다른 학교 1학년이 슛 폼 좀 봐 달라고 했을 때, 그는 그리 긴 말을 덧붙이지 않고 꽤 직설적인 조언을 해 줬다. 그가 듣기에 상당히 가소로웠을 투덜거림은 웃으며 반박해 주고, 빈말로 느껴지지 않을 격려도 해 주고.
언제, 어떻게 같은 말도 못 붙인 ‘또 봐요.’란 말에 그러자 대답해 주고.

 

다만 기상호가 몰랐던 게 또 하나 있었다.
그 막연한 ‘또 봐요.’가, 그때까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남의 학교 1학년 이름을 기억하자는 생각을 할 정도로는 힘이 됐다는…… 당사자에게 하기에는 꽤 낯간지러운 이야기였다.

 

 

~ 여기까지를 조금 다듬어 포타에 올렸습니다 ~

https://posty.pe/fyryu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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